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99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게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 조지 고든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한밤중에 지금도 가슴속에 사랑이 충만하고 지금도 달빛은 환하지만. 칼을 쓰면 칼집이 해어지고 정신을 쓰면 가슴이 헐고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도 때로는 쉬어야 하니. 밤은 사랑을 위해 있으나 낮은 너무 빨리 돌아오는법.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달빛 아래서도.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오래 된 기도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오래 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이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

파도의 말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파도의 말 / 이해인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울어줄게 마음놓고 울어줄게 오랜 나날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받은 모든 기억들 행복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 내가 대신 노래해줄게 일상이 메마르고 무디어질 땐 새로움의 포말로 무작정 달려올게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내 사랑하는 이여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내 사랑하는 이여 / R. 홀스트 우리 서로에게 부드럽게 대해요, 사랑하는 이여, 오랜 세월 바람에 떠돌던 별들 아래 지쳐 주체할 수 없이 외로우니 우리 서로에게 다정하게 대해요. 하지만 사랑의 숭고한 말들을 함부로 말하지는 말아요. 피할 수 없는 슬픔을 싣고 다니는 바람에 수많은 가슴들이 괴로워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우리 마치 오래된 숲길을 떠도는 공기 방울 같이 모든 것이 불확실하니 어찌 알 수 있을까요. 오직 바람만이 알 수 있지요, 내 사랑하는 이여, 우리 외로우니 서로 머리 기대고 살아요. 오래전부터 불어오던 바람 안에 침묵하면서 마지막 아껴 두었던 꿈을 함께 나눠요. 수많은 사랑이 바람에 갈 길을 잃어버리고 바람이 원하는 걸 우린 알지 못해요. 그러니 다시 서로..

언제인가 한 번은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언제인가 한 번은 / 오세영 우지마라 냇물이여, 언제인가 한 번은 떠나는 것이란다. 우지마라 바람이여, 언제인가 한 번은 버리는 것이란다. 계곡에 구르는 돌처럼, 마른 가지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삶이란 이렇듯 꿈꾸는것. 어차피 한 번은 헤어지는 길인데 슬픔에 지치거든 나의 사람아, 청솔 푸른 그늘 아래 누워서 소리없이 흐르는 흰 구름을 보아라. 격정에 지쳐 우는 냇물도 어차피 한 번은 떠나는 것이란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견딜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견딜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 강제윤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그리움을 견디고 사랑을 참아 보고 싶은 마음, 병이 된다면 그것이 어찌 사랑이겠느냐 그것이 어찌 그리움이겠느냐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을 때는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우리 사랑은 몇천 년을 참아왔느냐 참다가 병이 되고 사랑하다 죽어버린다면 그것이 사랑이겠느냐 사랑의 독이 아니겠느냐 사랑의 죽음이 아니겠느냐 사랑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말하지 마라 사랑은 살아지는 것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머지않아 그리움의 때가 오리라 사랑의 날들이 오리라 견딜 수 없는 날들은 견디지 마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주님..

행복한 혁명가

내 곁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행복한 혁명가 / 체 게바라 쿠바를 떠날 때,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