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깨어 있네 96

가야 소녀에게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가야 소녀에게 1500년 전에 어떤 연유로 지체 높은 분의 주검과 함께 순장된 15세의 어린 소녀는 콩을 즐겨 먹던 시녀라고 추정했지 첨단과학의 힘으로 복원한 소녀의 전신 모형은 아름답고 소박하고 친근하여 말을 걸고 싶네 그 모습이 전시된 장소엔 수많은 사람들이 신기해 하며 구경을 하러 간다고 했지 100년도 살까 말까한 이들이 1500년 전의 소녀에게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키가 작지만 둥그스름하고 복스러운 얼굴의 그 소녀가 자꾸만 나에게도 말을 걸어오네 '다시 한 번 가야국에서 멋지게 부활해서 이번엔 공주로 살고 싶어요 사랑하며 살고 싶어요' 나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흰 새들이 날아가는 하늘만 보네 희망과 믿음과 사..

작은 기도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작은 기도 기쁠 때는 너무 들뜨지 않게 도와주시고 슬플 때는 너무 가라앉지 않게 도와주세요 나의 말을 할 땐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시고 남의 말을 들을 땐 아무리 재미없어도 끝까지 인내하며 미소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날이 그날 같은 단조로운 일상에서도 기쁨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세요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성실과 겸손의 실습을 오늘도 게을리 하지 않도록 꼭 도와주세요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이별의 아픔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이별의 아픔 병들어 베어버린 나무 한 그루 다시 보고 싶어 밤새 몸살하며 생각했지 지상의 나무 한 그루와의 작별도 이리 서러운데 사랑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슬픔 감당하기 얼마나 힘든 건지 너무 쉽게 잊으라고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빨리 잊을수록 좋다고 세월이 약이라고 옆에서 자꾸 독촉하면 안 될 것 같아 사랑하는 이를 저세상으로 보내놓고도 곧 그가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내내 아파하는 이들에겐 마음껏 그리워하라고 말하는 게 더 아름다운 위로가 아닐까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해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꿈꾸며 떠난 길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꿈꾸며 떠난 길 먼 길 떠나는 날에도 아름다운 꿈을 꾸었지요? 당신만 아는 혼자만의 꿈 평화의 강을 건너 하느님을 만나는 꿈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빛과 함께 승리하는 꿈 꿈에 만난 당신은 고요한 미소로 고개 끄덕이며 나에게 꿈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떠나는 날 나도 당신처럼 고운 꿈 꾸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숨바꼭질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숨바꼭질 나를 찾지 마세요 나는 보이지 않게 숨었습니다 나를 찾아보세요 나는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어딘가에 숨었습니다 당신이 끝내 나를 못 찾아도 서운할 것이고 너무 빨리 찾으면 당황할 것이고 어찌해야 좋을지 정말 모르겠네요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나의 방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나의 방 비어 있어 아무도 없지만 가득 차서 모두가 있다 생각하고 꿈을 꾸고 잠을 자고 글을 쓰고 그림 그리고 바느질 하며 모두가 기도가 되는 나의 방은 조그만 천국이다 여기서 내가 보낸 조그만 일생은 행복했다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조용히 외치고 싶네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나무를 안고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나무를 안고 길을 걷다가 하도 아파서 나무를 껴안고 잠시 기도하니 든든하고 편하고 좋았어요 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야 나뭇잎들도 일제히 웃으며 나를 위로해주었어요 힘내라 힘내라 바람 속에 다 같이 노래해주니 나도 나무가 되었어요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길 위에서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길 위에서 나를 만나는 이들마다 기도를 부탁해요 부탁이 너무 많아 감당 못할 줄 알면서도 쉽게 약속을 하죠 나를 만나는 이들마다 살아가는 일 힘들다고 한숨 쉬어요 행복한 이들은 없어 보인다고 푸념을 많이 해요 나는 사실 행복하지만 그의 마음 다치지 않기 위해 함께 한숨 쉬며 시간을 보내요 너와 내가 다 불쌍해 보인다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요 이것이 위선은 아니길 빌고 빌어요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엄마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엄마 세상에 계실 때에도 세상에 안 계실 때에도 이름을 부르면 즉시 보고 싶어지는 엄마 때로는 밑도 끝도 없이 나를 눈물 글썽이게 만드는 엄마 산에 올라가도 바다에 나가도 엄마는 계속 고운 그림자로 나를 따라오시네 내가 어디엘 가든지 아직도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리운 엄마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그리운 집

찬미예수님!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시집 마음산책 채우고 싶은 것들 그리운 집 일생 동안 집을 그리워하다 집 없이 떠나는 나의 모습 마음에 사랑이 없는 한 오래 머물 집은 어디에도 없네 사랑하는 이들조차 온전한 집이 되지는 못하지 우리가 함께 있을 날이 그리 많지 않으니 짧은 오늘 속에 미리미리 영원을 살아야 하네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꽃향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