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57

책에 읽히지 말라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책에 읽히지 말라 지나온 자취를 되돌아보니, 책 읽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다.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는 데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교훈이다. 학교 교육도 따 지고 보면 책 읽는 훈련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이 열리고 귀가 틔인다. 그 또래가 알아야 할 보편적인 지식과 교양을 익히면서 인간이 성장하고 또한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 형성의 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독서(지식이 나 정보)는 더 물을 것도 없이 사람에게 해롭다. 육조 혜능 스님의 회상에 '법화경'*을 독송하기 7년이나 되는 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경전을 그저 읽고 외웠을 뿐 바른 진리의 근원에는 이르지 ..

임종게와 사리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임종게와 사리 한 생애를 막음하는 죽음은 엄숙하다. 저마다 홀로 맞이 하는 죽음이므로 타인의 죽음을 모방하거나 흉내 낼 수 없 다. 그만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숙하다. 일찍부터 선가에서는 '마지막 한 마디'(이를 임종게偈 또는 유게遺偈라고 한다)를 남기는 일이 죽음의 무슨 의 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그것은 대개 짧은 글 속에 살아온 햇수와 생사에 거리낌이 없는 심경을 말하고 있다. 바로 죽음에 이르러 가까운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생 애의 마지막 그 한 마디다. 따라서 죽기 전에 시작詩作을 하듯이 미리 써놓은 것은 유서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 에서 임종게는 아니다. 타인의 죽음을 모방..

무엇이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가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무엇이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가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있거라 너 가는데 물어보자 막대로 흰구름 가리키며 돌아 아니보고 가노메라 송강 정철의 시조인데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에 그림자가 어리어 다리 위 를 쳐다보니 한 스님이 지나가고 있다. 대사, 잠깐 물어보 세. 어디로 가는 길인가? 스님은 지팡이를 들어 흰구름을 가리키며 아무 대꾸도 하지않고 가던 길을 시적시적 지나 간다. 운수납자雲水衲子의 기품을 지닌 모습이다 '막대로 흰구름 가리키며 돌아 아니 보고 가노메라' 라 는 표현은 이 시조의 백미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

하늘과 바람과 달을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하늘과 바람과 달을 예전에는 시인詩人이란 직종이 따로 없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를 읊고 지었다. 제대로 된 선비(그 시절 의 지식인)라면 시詩, 서書, 화畵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 것은 보편적인 교양이었다. '승려 시인'이란 말도 예전에는 없었다. 경전을 읽고 어 록을 읽을 수 있는 스님들은 그 자신도 삶의 노래인 시를 짓고 즐겼다. 시詩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말씀 언' 변에 '절 사' 자이다. 절에서 수행자들이 주고받는 말이 곧 시라는 뜻이다. 바람과 달과 시냇물과 나무와 새와 꽃과 더불어 살아가 는 산중에서는,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언어의 결정체인 시 의 분위기로 이루어지..

5백 생의 여우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5백 생의 여우 산중에 짐승이 사라져 가고 있다. 노루와 토끼 본 지가 언제인가. 철 따라 찾아오던 철새들도 아직 감감무소식이 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쯤 찌르레기와 쏙독새, 휘파람새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골짜기에 메아리를 일으킬 텐데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산과 들녘뿐 아니라 산에 사는 사람의 속도 가뭄을 탄다. 8세기 중국에서 최초로 수도생활의 규범을 마련하고 수 도원을 세운 백장 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시퍼런 규범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그의 주변에 는 삶의 교훈이 많다. 백장 스님의 설법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한 노인이 뒷자리 에서 법문을 듣다가 대중을 따라 ..

그림자 노동의 은혜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그림자 노동의 은혜 혼자서 먹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때로는 머리 무 거운 일인데 여럿이 모여 사는 대가족의 경우는 음식 만드 는 일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큰일이다. 밖으로 드러내 지 않고 가려진 곳에서 하는 일을 '그림자 노동'이라고도 한다. 주부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그림자 노동에는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다. 굳이 일의 공덕을 따지 자면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하는 이 그림자 노동에 그 공덕이 있을 것이다. 스님들이 많이 모여 사는 큰절에는 각기 소임이 있는데,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공양주와 채공에게 장을 보아다 가 물자를 대 주고 후원 일을 총괄하는 소임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가 오기전에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가 오기전에 어느 날 길상사에서 보살님 한 분이 나하고 마주치자 불 쑥, "스님이 가진 염주 하나 주세요"라고 했다. 이틀 후 다 시 나올 일이 있으니 그때 갖다 드리겠다고 했다. 이틀 후 에 염주를 전했다. 그때 그 일이 며칠을 두고 내 마음을 풋풋하게 했다. 평소 나는 염주나 단주를 몸에 지니지 않는다. 불단 곁에 두고 예불 끝에 염주를 굴리며 염송을 하거나 침상 머리에 두고 잠들기 전에 잠시 굴리며 무심을 익힐 뿐이다. 요즘에 와서 느끼는 바인데, 누구로부터 받는 일보다도 누구에겐가 주는 일이 훨씬 더 좋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주는 일보다 받는 일이 훨..

차 덖는 향기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차 덖는 향기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장마철은 차 맛이 떨어진다. 이 구석 저 구석을 정리하다가 까맣게 잊어버린 차 덖는 프라 이팬을 찾아냈다. 자루에 '차 전용'이라고 표시까지 해 놓 은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도 있듯이 차 덖는 기구를 본 김에 차를 덖었다. 우선 뭉근한 불에 프라이팬을 데우면 서 사나흘 마실 차를 덜어서 덖는다. 이때 조그만 대수저로 차를 저어야 차가 타지 않고 고루 덖어진다. 차 덖는 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이내 프라이팬을 불에서 내려놓고 식혀야 한다. 자칫 때를 놓쳐 차를 태우면 헛일이 기 때문이다. 식은 차는 차 통에 넣어 때에 따라 꺼내어 쓴 다. 같은..

베갯잇을 꿰매며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베갯잇을 꿰매며 베갯잇을 꿰맸다. 여름 동안 베던 죽침이 선득거려 베개 를 바꾸기 위해서다. 처서를 고비로 바람결이 달라졌다. 모든 것에는 그때가 있다.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던 지겹 고 무더운 여름도 이제는 슬슬 자리를 뜨려고 한다. 산자락 에 마타리가 피고 싸리꽃이 피어나면 마른 바람이 스쳐 지 나간다. 해마다 겪는 여름철 더위인데, 방송과 신문마다 몇 년 만 의 찜통더위라고 호들갑을 떨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가 질 려 더위를 더 탄다.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한 계절의 순환이다. 여름이 덥지 않고 춥다면 그것은 이변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는 여름철 더위 덕에 벼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문학의 숲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얼마 전에 그전에 살던 암자에 가서 며칠 묵고 왔다. 밀 린 빨래거리를 가지고 가서 빨았는데, 심야전기 덕에 더운 물이 나와 차가운 개울물에서보다 일손이 훨씬 가벼웠다. 탈수기가 있어 짜는 수고도 덜어 주었다. 풀을 해서 빨랫줄 에 널어 말리고 다리미로 다리는 일도 한결 즐거웠다. 다락에서 아직도 쓰이고 있는 두 장의 걸레를 발견하고 낯익은 친구를 만난 듯 만감이 새로웠다. 이 걸레는 이 암 자가 세워진 그날부터 함께 지내온 청소 도구다. 1975년 10월에 이 암자가 옛터에 새로 지어졌는데 그 때 한 노보살 님이 손수 걸레를 만들어 가져오셨다. 지금은 대개 타월을 걸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