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분간 -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生,
내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날리는 꽃그늘 아래서 여섯 살배기 아이가
타고 올 버스를 기다리는 오 분 간.
아이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결국은 자식을 기다리면서 서성거
리면서 일생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임을.
늙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동안 아이들은 훤칠한 청년으로 자
라고 그렇게 서로의 삶의 자리를 바꾸어가는 것임을.
기다림 하나로 생은 잠깐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것임을.
그러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날이 오기도 하는 것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날까지 합해져서 어머니의, 부모의 기다림은
완성되어 가는 것임을.
그 생각을 하는 동안 아, 저기 버스가 온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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